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안티크리스트]] ==== >현재 정말로 활동적인 인간들은 마음속으로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중간 정도 수준인 좀 더 온순하고 좀 더 관상적인 사람들은 오직 (현재에 맞게) 조정된 기독교, 즉 놀라울 만큼 단순화된 기독교를 믿고 있을 뿐이다. > >자신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루게 하는 신, 행복과 마찬가지로 덕을 우리에게 주거나 빼앗으면서 전체적으로는 항상 올바르고 선하게 진행되게 하고 우리가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난할 아무런 근거가 없게 하는 신 > >간단히 말해 신성으로까지 높여진 체념과 겸손ㅡ 이것이 여전히 기독교에 남아 있는 최상의 것이자 가장 생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는 기독교가 부드러운 도덕주의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 자유, 불사'가 아니라, 오히려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 그리고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안락사다. >---- >― 『아침놀』, '기독교가 죽어가는 침대에서' 기독교는 비유하자면 독수리에게 쫓기는 토끼이다. 토끼는 사냥하는 독수리를 악하다고, 핍박받는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토끼의 망상으로, 독수리는 단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뿐이다. 여기서 선악을 구분하는 토끼의 마음은 '노예도덕'이고, 선악의 구분 없이 호오로 판단하는 독수리의 마음은 '주인도덕'이다. 즉 토끼와 같은 약자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과 희생'으로 몰아넣고, 이를 '선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독수리와 같은 강자는 굳이 선하려고 마음먹지 않으며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거이 행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는 노예도덕이다. 현세가 아닌 사후의 천국과 종말론에 의지하여 도덕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지상에서의 삶을 희생시키고 금욕적인 삶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욕망을 부정하도록 가르치는 기독교를 때려부숴야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리의 울림마다 사탕처럼 달콤한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약한 것을 좋음으로 위조하려고 합니다. >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바뀝니다. 약자의 비공격성, 약자가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비겁함 자체, 그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이 서성이기만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인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미덕이라고 까지 불립니다. 복수할 수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 불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한 '적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입니다. > >이러한 밀담자[* 밀담자는 앞에서 말한 '약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밀담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지, 도덕을 강조하기에 약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와 구석에 있는 화폐 위조자[* 약자(밀담자)의 천박함과 비겁함을 이용해, '도덕(선, 겸허, 순종, 인내)'을 강조하며 그것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의 도덕은 '용서'와 '적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그리스도교)의 도덕을 말하므로, 여기서 '화폐 위조자'가 뜻하는 것은 '''성직자'''를 말하는 것이다.]들이 모두 이미 서로 따뜻하게 의존하며 웅크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들은 가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련함이 신에 의해 선택받은 영예이며, 마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를 때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내게 말합니다. >---- >― 『도덕의 계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